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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의사들을 만나 왔다. 2000년부터 5년간은 캡슐형 내시경 개발을 위해, 그 이전에는 짬짬이 만났다. 최근 또다시 만남이 시작됐다. 모두 인체 진단이나 치료용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공학자는 인체를 모르고, 의사는 인체 영상을 얻기 위한 공학적인 지식을 모른다. 서로 부족한 지식 공백을 메우며 캡슐형 내시경을 개발했던 경험은 지금까지 가슴 뿌듯하다. 서로 힘을 합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 등 끊임없는 조율 과정이 필요했다. 공학적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기능도, 의학적으로 보면 인체에 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용 로봇을 개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의료용 로봇의 활용이 매우 더디다는 데 거꾸로 놀랐다. 미국 수술 로봇 '다빈치'는 사람의 손목처럼 유연한 로봇팔이 수술하고, 사람은 뒤에서 조종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처음 사용해 매스컴에 소개된 연세대 의대 이우정 교수는 의학과 공학 간의 벽을 가볍게 넘어 공학자와 로봇이라는 단어를 공유하는 재능을 지녔다. 언젠가 수십년간 로봇 강의를 해 온 로봇 전문가에게 되레 로봇의 기초를 강의하려 하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보통 복부 수술은 의사가 손으로 하므로 수술 부위가 깊은 경우 배를 더 많이 절개해야 하고 손이 움직여야 하므로 내장이 손상될 수 있다. 반면 수술 로봇은 배에 작은 구멍만 뚫고 가는 로봇 팔만 들어가면 내부를 카메라로 보면서 수술하므로 다른 부위가 손상될 염려가 훨씬 작은 장점이 있다. 뼈를 깎고 인공관절을 심을 경우 수작업으로 하면 관절이 들어갈 위치와 크기가 매우 부정확한데 비해 로봇을 쓰면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다. 수술 로봇은 사람에 비해 강하고 위치가 정확하며 사람처럼 피로를 느끼지 않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 팔이 떨릴 경우에는 이를 감지해 무시하는 우수한 기능도 들어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술 로봇이 좋다고 하면 단순한 생각이다. 수술 로봇도 어차피 상품이며, 돈을 벌기 위해 수술 로봇을 만든 회사는 당연히 다양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물론 인체는 너무나 소중한 대상이므로 걸맞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수술을 담당하는 로봇 팔과 손목 부위는 수술을 열 번 하면 교체해야 한다며 수백만원씩 하는 멀쩡한 부품을 교체토록 한다. 잉크젯 프린터가 소모품인 토너 교체로 돈 버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고수익 사업을 국산 로봇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로봇 인체 수술 장면을 독일의 한 대학병원에서 처음 목격했다. 혈관용 마이크로 로봇에 대한 국제공동연구를 계획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다. 독일 심장 전문의가 마침 수술 중이니 직접 보라고 했다. 그 느낌은 참 삭막했다. 심장을 감싸고 있는 관상동맥 우회술이라는 수술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다시 혈관 속에서 진단.치료를 하는 초소형 로봇 개발을 기획하고 있다. 작업하면서 느끼는 점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점이다. 최소한 반도체나 휴대전화 시장과 비교하면 그렇다.

어느 한 분야만 유난히 잘되거나, 유난히 형편없는 사회나 국가는 드물다. 한 분야가 잘 되려면 사회 기반구조도 그에 걸맞아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와 있으며, 로봇 강국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취약한 의료기기 시장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의료기기는 고부가 제품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인력 인프라는 충분한데 동반자인 국내 산업기반이 취약한 것이다.

수술 로봇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국내에 의료 기기사업이 일어나고 수술 로봇을 개발해 상용화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이제부터라도 종종 접하길 기대한다. 고수익 사업인 수술 로봇 사업은 선진 한국으로 가는 첩경이 될 수 있다.

박종오 전남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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