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마우스 역사(?)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웹서핑 중....
2003년 지식인에 올라온 마우스의 역사(질문자는 PC 의 마우스에 대한 질문이었음 -_-;;)
에 대한 답글로 다음의 글이 올라와 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나도 자세히 알지못했던 사실이 더러 있는데... 누가 쓴 글인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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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마우스 vs 미로> 문제의 최초 기록은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nformation theory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Dr Claude Shannon과 MIT공대의Emeritus 교수는 두개의 모터로 움직이고 감지 손가락을 가진 최초의 미로 찾는 기계를 만들었다.
2년뒤 Dr Shannon은 미로 밑바닥에 설치된 릴레이 회로에 의해 기억된 정보에 의하여 미로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전자적인 마우스를 만들었다.
1972년 Machine Design이라는 잡지는 Le Mouse 5000이라는 대회를 후원하였는데 쥐덫의 스프링 힘으로만 동력을 얻는 기계적인 마우스 대회로서 경기 트랙을 누가 멀리 주행하는가를 겨루는 경기였다.
1등은 Mousemobile로서 기록은 825.3 feet (약 251.55m) 였다.
한편 1977년 Machine Design은 1972년의 Le Mouse 5000 대회를 보다 발전시킨 The great Clock Climbing Contest 라는 이름의 다른 마우스 대회를 후원하였는데 여전히 기계적인 메카니즘을 겨루는 대회였다.
한편 IEEE Spectrum 잡지의 편집장인 Don Christiansen은 전기전자 공학도를 위한 진정한 전자적인 마우스를 위한 대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심사숙고와 마이크로 프로세서 제조업체와의 협의를 거쳐 드디어 "복잡한 미로를 풀고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능을 불어 넣은 조그만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제어되는 운반체"라는 마이크로마우스의 개념을 내놓았다.
드디어 1977년 5월 Amazing Micromouse Maze Contest 라고 불리우는 첫번째 미국 대회가 스펙트럼지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1979년 6월 5일~7일 동안 뉴욕에서 전국 컴퓨터 컨퍼런스의 하일라이트
로서 15대의 마우스가 모여 1000불의 상금을 노리고 모두들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상품으로는 Tektronix에서 기증한 오실로스코프와 Atari에서 기증한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1977년 5월 대회를 발표한 이후 4차례의 예비 모임끝에 이루어지는 결승전이었다. 15대의 약간은 엉성한 마우스들은 6000대의 참가 신청자들 중의 일부로서 참가 신청자 중에는 이탈리아 같이 먼곳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참가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두뇌가 망가졌다거나 마우스가 타버리거나등의 여러 이유로 불참을 하였다.
관심은 높은 반면 실망스럽게도 지능형 마우스를 설계하고 조립하는데 생각보다 형편 없는 것들이었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500에서 1000시간을 소모했고 대다수는 하는 일도 접어 두고 매달렸으며 대략 재료비로는 500불정도가 들었다고 하니 상금이 대회를 참가하는 주요 목적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15대의 마우스중에 4대만이 10X10 미로를 1차 주행에서 풀었으며 추가로 2대가 3차 시도에서 성공하였다.
최후의 승리자는 Moonlight Flash로서 미로 통과 기록은 30.04초였다.
지능이 없는 기계적 마우스가 상대적으로 전자적으로 복잡하고 보다 지능이 있는 적수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이 이후의 대회 규정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즉 골이 미로 주변에서 가운데로 옮겨지게 되어 단순히 벽을 따라가면 골을 찾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영국 Portsmouth Polytechnic의 John Billingsley 교수는 1980년 변경된 규정을 적용하여 런던에서 Euromicro'80을 시작으로 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일본 신기술진흥재단에서 온 5명의 대표단들이 대회를 참관하고 규정을 일본으로 가져가 같은해
11월 제1회 전일본 마이크로마우스대회를 개최하였다.
1회 전일본 마이크로마우스 대회에서는 18대의 마우스 모두 완주에 실패하였으나 5년후 1985년 8월 일본 쯔쿠바 박람회에서는 첫번째 국제마이크로마우스대회가 개최되었다.
일본은 세계대회를 개최하고자 미로를 세계 여러나라에 보내고 동일한 조건에서 연습할 기회를 가질 것을 희망하였고 각나라에 대표를 파견하여 그곳 대회를 참관하고 우승자에게 세계 대회 참가를 초청하였던 것이다.
유럽과 미국등지에서 온 마우스들은 여러가지 형태와 크기로 적외선 센서, 초음파 센서, CCD센서 등을 채용하였고 스테핑모터, DC서보 모터 등의 구동 메카니즘으로 우승을 놓고 경쟁을 하였다. 결과는 상위권 6위까지 입상을 일본인들이 독식하였다.
1위는 Noriko-1로 후꾸야마 컴퓨터 클럽 회장인 제작자의 부인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기록은 19.83초였다. 이같은 결과는 대회 미로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일본이 미로를 보내는데 문제가 많아서 실제로 많은 연습을 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미로벽 윗부분이 상대적으로 반사율이 낮았고 방송용 조명 등의 영향으로 영국의 Enterprise를 제외한 외국팀들은 골을 찾지도 못하고 끝났다.
미국에서는 1979년 Amazing Micromouse Maze Contest이후 대회가 사라졌다가 이대회를 조직한바 있고 이후 마이크로마우스의 어머니로 알려진 Susan Rosenbaum의 노력으로 1986년부터 대회가 부활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1987년에는 IEE 주최로 영국 Savoy Place에서 마이크로마우스참피언쉽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13대의 마이크로마우스가 모여서 결전을 벌였다. MIT의 David Otten은 MITEE MOUSE I과 MITEE MOUSE II로 1등과 2등을 모두 차지하였다.
새롭지만 약간은 복잡한 채점 방법이 적용
되기도 하였다. 만약 마우스가 시작점에서 종점까지 제작자의 도움없이 주행을 마칠 경우 주행시간에서 보너스 10초를 삭감한다.
일단 마우스에 손을 대면 보너스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 시간에 마우스가 주행을 시작하여 경과된 시간을 매분에 2초씩 더한다.
이러한 새로운 기록 방식으로 1등인 MITEE MOUSE II의 기록은 미로에서 2분48초를 사용하였고 최단 주행 시간은 15.7초로 환산한 경연 시간은 10.6초였다.
다음으로 주요한 대회는 1991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는데 이전보다 한층 속도가 증가하였다. 1등은 MIT David Otten의 MITEE MOUSE 6이 보너스를 받아서 10.19초의 기록으로 우승하였고 일본의 Noriko X는 10.23초의 기록으로 가장 빠른 주행시간을 보였다.
같은해 홍콩에서는 월드 참피언쉽 대회가 열렸으며 1985년 쯔쿠바대회 이후 가장 많은 13개국에서 온 21명의 참가자가 30대의 마우스를 출전시켰다. 싱가포르의 Ngee Ann Polytechnic에서 온 신예가 일본의 노리꼬나 미국의 MITEE MOUSE를 누르고 영예를 차지하였다.( 이 대회에서 규정이 변경되어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속도보다는 안정성에 중점을 두고 규정이 변경되었다. 손을 대지 않음으로 받는 보너스를 10초대신 패널티를 더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홍콩대회에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David Otten의 45도 대각선 주행을 여러 마우스가 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