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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둔 부모들은 뽀로로 때문에 시원섭섭하다. 유아들이 틈만 나면 뽀로로에게 시선을 주고 자신들은 쳐다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보기는 본다. 뽀로로를 리플레이 해달라고 할 때만. 뽀로로를 아이가 보면 그 시간에 물론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에 뽀로로가 고맙기도 하지만 섭섭하다. 부모의 얼굴보다 뽀로로의 얼굴에 더 시선을 두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유아판 우정의 무대라는 말도 있다. 부모를 놔두고 뽀로로 공연무대에 유아들이 올라가려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어린 유아들의 선물로 가장 많이 선호되는 것은 뽀로로다. 원소스멀티유스 차원에서 다양한 파생상품이 만들어져왔다. 수천억원의 수익에 110여개국에 수출된 뽀로로는 아동 한류스타이다. 뽀로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나라가 프랑스였다는 생각을 하면 뽀로로는 유럽선진국 진출을 애타게 염원하던 문화 콘텐츠계의 염원을 풀어준 측면도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K-POP 열풍이 불고 있는 사실을 볼 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동과 청소년에 소구하는 한류콘텐츠가 있다면 적어도 프랑스에는 한류의 미래는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에는 한류의 미래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음을 생각한다면 더욱 더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뽀로로가 문화대통령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연원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창작되는 콘텐츠가 없으며 이는 문화교류의 상호성의 원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텔레토비의 등장은 유아심리에 대한 연구가 콘텐츠 구성원리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텔레토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아의 몸동작과 닮았고 또래집단이 느리고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서 내용의 이해력을 높였다. 거의 말이 등장하지 않아 문화할인율도 낮추었다. 

뽀로로는 유아심리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 내었다. 유아들이 좋아하는 펭귄이나 공룡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들의 행동거지는 매우 여유가 있어서 유아들이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설원을 배경으로 극복해야할 본능적인 과제를 다루고 그것을 또래집단이 풀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부모가 전혀 없고 오로지 자신들만이 모든 것을 겪고 헤쳐나간다. 아울러 캐릭터의 등신비를 최대한 낮춤으로써 유아들이 통제감, 우월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기존애니메이션의 한계를 혁신적이고 근본적으로 뛰어넘은 것이 주효했다. 바로 시선처리의 문제이다. 

과거 <역사스페셜>을 진행하는 유인촌은 대본을 다 외우기로 유명했다. 물론 대본을 외우기까지 많은 사전공부가 필요했다, 대본을 다 외우고 녹화장에 임한 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마치 자신을 똑바로 보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진행하는 그에게 시선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역사스페셜>의 시청률 증가로 이어졌다. 

물론 그가 연극배우였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표현을 통해 시청자 개개인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몰입을 이끌어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이후의 진행자들은 이러한 시선 처리에서 실패함으로써 몰입을 상대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기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시청자를 생각하지 않는 듯이 자신들끼리 대화를 했다. 시선은 앞을 정확히 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뽀로로의 주인공들은 앞에 적극적으로 시선을 주었다. 서로 대화를 할 때도 앞을 보고 이야기하는 형태를 취했다. 마치 시청자 그러니까 유아를 보고 말을 하고 행동하며, 때로는 앞으로 달려오고 넘어지는 듯이 보인다. 

유아들은 자기중심성,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인식이 강하다. 자신에게 시선을 두는 것은 이러한 심리에 정확하게 일치한다. 커다란 얼굴과 눈을 가진 주인공 뽀로로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강한 정서적 유대인과 친화력을 낳는다. 뽀로로는 더이상 남이 아니라 자신과 언제나 공존하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일상의 각종 모험속의 주인공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으니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가. 

이 콘텐츠는 유아들에게도 강한 존재의식, 자의식이 존재한다는 점에 정확히 소구하고 있다. 유아들은 끊임없이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기 바란다. 실제 유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시선을 주기는 매우 힘들다, 심지어 부모라도 말이다. 그러나 뽀로로는 그런 실제 주변 사람들이 주지 못하는 시선을 항상 유아에게 주고 있다. 

어린이날은 이렇게 1년동안 시선을 주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몰아서 풀어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날이 지나면 또한 시선은 사라질 것이다. 뽀로로라는 콘텐츠는 유아들이 원하는 시선받기의 본능에 충실했다. 유아는 단순히 유아가 아니라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인간임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뽀로로의 성공은 단순히 캐릭터를 잘 팔릴만하고 만드는 전술차원이 아니라 어린이, 유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단순히 콘텐츠 창작에만 주는 합의점을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우선요건은 바로 이런 자기존중감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K-POP과 뽀로로의 한류 현상의 중요함의 점은 우리전통의 고수가 아니라 현대 세계인의 보편적 기호들의 콘텐츠화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적 정서와 문화 기호들이 반영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네티즌 청원에 맞추어 뽀로로 식사 장면의 케익과 과자중심에서 한식을 곁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출처 :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4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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