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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편하게만 입자면 지금 스타일 그대로도 좋다. 하지만 당당하고 근사한 남성의 모습엔 적당한 긴장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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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복식사를 따라가 보면,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남성의 의복은 여성의 그것만큼이나 화려했다. 레이스 달린 셔츠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허리띠, 굽 높은 구두도 남성들이 애용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이제 남성에게 남은 것은 ‘수트’ 뿐이다. 출근할 때는 물론 상례든 혼례든 간에 갖춰 입을 장소엔 양복을 입고 넥타이 매야 예의라고 여기게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득이 높아지고 해외 업무나 출장 기회가 많아지면서 남성들이 ‘스타일’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옷 입는 데도 격식이 있고, 여기에 자신만의 개성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사실. 뒤늦게 이 부분에 눈뜬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늘게 된 이유다.

‘양복’이란 말 그대로 서양에서 온 것이니, 내 것도 아닌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걸 탓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수트 스타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게 된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운동복이 아니라 양복을 입었는데도 헐렁해 보이는 실루엣, 번쩍번쩍 빛나는 은회색 양복을 빼입고 과하게 멋을 낸 차림도 정답은 아니다. ‘옷차림도 경쟁력’이란 구호가 요란하니 더욱 그렇다. 고민이 깊어지는 독자들을 대신해 J-Style이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수트를 아느냐-.”


글=강승민·이진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V존 역삼각형을 맞춰라

# 라펠·셔츠·넥타이의 ‘V존(zone) 법칙’


알파벳 ‘V’를 닮은 재킷의 양쪽 라펠 사이를‘V존(zone)’이라고 한다. 셔츠와 넥타이가 재킷의 라펠과 어울려 멋을 완성하는 부분이다. 수트에 받쳐 입는 것을 드레스 셔츠라 하는데 이것은 본래 재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용도다. 이런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드레스 셔츠의 칼라는 재킷의 깃보다 높아야 하고 소맷부리는 재킷 소매보다 1~2 길어야 제 몫을 다하는 것이다. V존에서 유의할 첫 번째는 각도 문제다. 재킷의 라펠, 셔츠의 칼라가 벌어진 각도와 넥타이 매듭의 역삼각형에서 양변이 벌어진 각도가 비슷해야 균형잡힌 V존이 된다. 두 번째는 색과 무늬다. 여기서 일반적인 공식은 셔츠, 타이, 라펠(또는 재킷) 세 가지 모두를 줄무늬로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타이와 라펠이 줄무늬라면 셔츠는 민무늬로 하라는 말이다. 본래 정통 수트 스타일에서 드레스 셔츠는 흰색 민무늬가 보통이긴 하지만 색이나 무늬 있는 셔츠도 신경을 좀 쓰면 멋지다. V존 조합의 일반적인 원칙과 달리 감각 있는 이탈리아 멋쟁이들은 세 가지 모두 줄무늬 조합을 애용한다. 이들의 비밀은 다른 간격의 줄무늬를 섞는 것이다. 줄무늬 사이의 간격 혹은 줄무늬 자체의 폭이 서로 다른 것끼리는 잘 어울릴 수 있다.

# 개성을 뽐내려면 … 액세서리

수트에서 신경써야 할 액세서리는 커프스 단추, 시계, 벨트, 포켓 스퀘어 등이다. 셔츠 소매 끝 커프스 단추는 본래 넥타이 핀과 짝을 맞추어 하는 게 전통이지만 요즘엔 커프스 단추만 따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커프스 초보자라면 금속으로 돼 있는 형태가 무난하다. 색깔 있는 보석 등으로 장식돼 있는 커프스도 좋지만 이때엔 시계나 셔츠의 무늬, 넥타이 색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어렵다. 시계는 밴드 부분이 금속 소재로 돼 있는 것이 좋다. 가죽 소재의 것으로 하려면 벨트나 구두 색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세 가지 모두 비슷한 계열의 색으로 맞추면 더욱 정숙해 보인다. 정장 벨트는 가죽 소재의 것으로 고르고 버클의 금속 장식은 벨트의 폭보다 과히 크지 않아야 한다. 재킷 왼쪽 가슴 부분에 꽂는 포켓 스퀘어는 접는 모양에 따라 다르게 연출해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이다. 포켓 스퀘어가 단색이라면 넥타이 색깔과 맞추기도 하지만 강렬한 원색 혹은 현란한 무늬가 있는 것은 타이를 매지 않아도 멋있다. 단, 타이 없이 화려한 포켓 스퀘어를 한 것은 공식적인 자리보다는 파티 같은 곳에 더 잘 어울린다.

# 캐주얼 데이에도 감각은 죽지 않는다

신사의 주말은 블레이저나 헌팅 재킷으로 시작된다. 금요일엔 캐주얼이 필수인 직장도 많다. 정통 수트 스타일을 이해하고 있는 남자라면 캐주얼 데이에도 감각을 뽐낼 수 있다. 감색 재킷에 금색 단추로 대표되는 블레이저는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차림과도 비슷하다. 칼라 끝부분에 단추가 달려 있는 ‘버튼 다운’ 셔츠와 함께 입는 것이 공식이지만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다. 세로 줄무늬나 체크 무늬의 재킷과 흰색 셔츠 정도면 캐주얼을 입을 때도 적당히 격식을 갖출 수 있다. 캐주얼을 입는다고 해서 꼭 넥타이를 풀 필요도 없다. 청바지에 드레스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다음 블루종 형태의 재킷을 덧입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 유럽에서 유행하는 스타일 중 하나다.


셔츠·넥타이·재킷 ‘줄무늬 일색’ 피하자

# 한눈에 보는 재킷 스타일


캐주얼 입는 날이라고 면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가 능사는 아니다. 간단한 원칙에 몇 가지 정보만 더해도 ‘멋쟁이’ 소리를 듣긴 쉽다.
◇단추로 구별하기=양복을 고를 때 바지보다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이 재킷이다. 재킷을 구별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추의 개수다. 전통적인 남성복 재킷에는 단추가 3개다. 단추가 3개 달린 이탈리아식 남성복에선 제일 위에 있는 단추와 단춧구멍이 라펠에 살짝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재킷의 가운데 단추만 잠그면 버튼 2개짜리처럼 보이는 것이다. 단추가 하나만 있는 검정 재킷은 턱시도와 닮았다. 턱시도가 아닌 수트 재킷으로 1960년대 유행했던 스타일이기도 하다. 요즘 젊은층이 즐겨 찾는 정장 브랜드에서 다시 선보이고 있다. 단추가 명치 아랫부분 정도에 있는 것은 V존의 아래·위 길이가 짧아 키가 크고 마른 사람에게 어울리고, 단추의 위치가 배꼽 윗부분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에 적당하다. 단추가 어떤 재질이냐에 따라 고급 양복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도 한다. 재킷의 원단을 두고 150수, 160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자개나 물소의 뿔 같은 재료로 만든 단추는 고급 양복의 대표적인 표시다. 소매 끝에 4개 정도 달려 있는 단추도 재킷의 질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유행 반영하는 라펠=재킷의 라펠 모양은 단추 개수만큼이나 유행에 민감한 부분이다. 라펠의 폭이 좁은지 넓은지, 아니면 라펠 아래쪽 부분이 크고 높게 솟구쳐 오른(피크트, peaked) 형태인지 하는 것이다. 요즘은 피크트 형태의 라펠이 젊은층이 선호하는 양복에서 조금씩 눈에 띈다. 아래쪽 라펠이 너무 크게 삐죽 올라와 있으면 디자인이 과해 보이므로 고를 때 주의하는 것이 좋다. 요즘 라펠 부분에서 유행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벨벳 천이나 테이프 같은 것을 라펠에 덧대 변화를 주는 것이다. 역시 디자인이 강조돼 있으므로 소화하긴 쉽지 않다. 점잖은 자리엔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트 인상을 결정 짓는 어깨선=재킷에선 주의할 것이 많다. 수트의 인상을 결정짓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재킷을 입었을 때 겨드랑이 부분을 감싸는 암홀 부분과 어깨선도 재킷을 고를 때 꼼꼼히 살펴야 한다. 수트에서 암홀은 팔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제대로다. 재킷의 앞판과 소매 부분이 이어지는 어깨 끝 부분에 심지가 들어가 있는데, 이것이 딱딱하고 각이 져 있는 형태는 대개 미국식이다. 또,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리게 디자인된 것은 유럽식이다. 어깨 라인에 자신이 없다면 각진 형태가, 운동을 적당히 해 어깨선이 발달했다면 흐르는 모양이 더 어울린다.

◇자유를 주는 벤트=‘벤트’로 불리는 뒤트임은 양쪽으로 트인 것과 척추를 따라 절개선이 하나인 것, 또 모두 막힌 것의 세 가지다. 트임 두 개짜리는 신사복의 나라 영국에서, 한 개짜린 미국에서, 없는 것은 유럽 사람들이 주로 선호했다. 긴 코트를 입고 말을 타던 군인들이 편하기 위해 개발된 벤트는 여전히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실용적인 이유로 고안됐지만 디자인 면에서도 그 역할이 크다. 엉덩이 부분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트임 하나짜리,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두 개짜리가 좋다.

◇최종 선택=재킷을 선택할 때 고려할 것의 마지막은 ‘얼마나 몸에 잘 맞는지’다. 두 가지 포인트만 기억하면 된다. 한 손을 반대편 어깨에 살짝 올려놨을 때 접은 손의 어깨 윗부분이 불룩해 지는지 살핀다. 제대로 맞는 것은 이런 상태에서도 어깨선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느낌이다. 나머지 하난 라펠의 안정감이다. 어깨와 허리는 꼭 맞지만 몸통이 너무 두꺼운 경우 라펠이 가슴에 착 붙지 않고 붕 떠보인다.

이것만은 피하세요

돌체&가바나가 제안하는 올봄·올여름용 수트 스타일. [돌체&가바나 제공]
▶줄무늬, 체크 무늬는 주의하세요

세로 줄무늬 수트에 세로 줄무늬 셔츠, 거기에 줄무늬 넥타이를 매선 안된다. 수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V존이 어지럽고 너무 복잡해 보여서다. 체크 무늬도 마찬가지. 초보자는 반드시 피해야 할 스타일. 그래도 줄무늬가 좋은 ‘스타일 고수’라면 서로 다른 줄간격의 것들을 조합하거나 무늬가 옅은 것과 짙은 것, 굵은 것과 가는 것 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은갈치’는 버려라

실크를 섞어 광택이 나는 은회색 양복을 흔히 ‘은갈치 스타일’이라고 한다. 무조건 화려한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만 몇년째 유행 중이다. 얼굴만 동동 떠다니는 느낌을 줄 수 있으니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통 좁은 바지에 커프스는 금물

바지 밑단을 길이에 맞게 조정하면서 끝을 바깥 쪽으로 정리하는 것이 커프스. 흔히 ‘카브라’로 부르지만 잘못된 말이다. 바지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벨트 아랫 부분에 ‘턱’ 혹은 ‘플리츠’로 불리는 주름이 있는데 이것이 없는 바지에는 커프스가 어울리지 않는다. 바지 통이 아래로 좁아지는 것도 절대 금물.

▶‘버튼 다운 폴로 셔츠’에 수트는 입지 마세요

칼라를 고정하는 단추가 있는 ‘버튼 다운 폴로 셔츠’는 말 그대로 폴로 경기용으로 고안됐다. 바람에 칼라 깃이 날려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캐주얼 차림엔 몰라도 수트 스타일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벨트와 서스펜더를 함께 할 순 없다

‘멜빵’이라 불리는 서스펜더는 커머번드를 하고 벨트를 할 수 없는 턱시도 차림에 제격이다. 물론 캐주얼에도 어울린다. 서스펜더가 벨트 역할을 대신하므로 당연히 두 가지를 같이 해선 안된다.

▶물론 흰 양말은 안 신겠죠

수트의 양말 색깔도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 흰 양말을 신는 사람은 드물지만 색 있는 양말이라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멋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짙은 감색 바지에 밝은 회색 양말은 안된다. 바지 혹은 구두보다 더 짙은 색이 원칙이다.

▶품에 한번 맞춰 보세요

양복은 그냥 편하게 입는 옷이 아니다. 양복이 편한 옷이라면 굳이 캐주얼 데이가 있을 필요도 없다. 수트 스타일에서 자주 지적되는 얘기지만 어깨와 허리가 너무 편한 것은 양복이 아니다.

▶셔츠 칼라에 스티치 들어간 건 좀

셔츠 칼라 중간에 인조 보석을 달거나 칼라 끝 부분에 시침질(스티치)로 멋을 낸 것은 정통 수트 스타일에 아무래도 어색하다. 흰색 드레스 셔츠만 입다가 무늬나 색이 있는 셔츠까지 발전하긴 했지만 말이다.

▶재킷 주머니는 비워 두고 브리프 케이스 하나 장만하시죠

재킷 주머니가 불룩해질수록 옷이 망가진다. 수트는 원래 남성의 몸을 따라 흐르도록, 잘 갖춰진 몸매가 살짝 드러나도록 만든 옷이다. 소지품을 챙길 만한 남성용 가방이 필수다.


◆도움말 주신 분=전광석(꼬르넬리아니·남성복 바이어), 정희진(갤럭시·디자이너), 송재원(조르지오 아르마니·브랜드 매니저), 백성철(돌체&가바나·남성복 바이어), 노호정(롯데백화점 이탈리움·CMD), 로로 피아나 코리아, 앨런 플러서 커스텀 숍(미국)
◆모델=치만·노재성(커마스)
◆촬영 협조=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가바나, MCM, 살바토레 페라가모, 바나나 리퍼블릭, 나이키
◆장소 협조=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 여의도 파크 센터-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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